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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무라 이치 <즈우노메 인형>

일어번역가 이진아 2025. 6. 20. 20:30

흔한 괴담이 도시 전설로 확립되는 순간

 

대놓고 <>을 오마주하는 소설입니다. 따라서 <>에 대한 약간의 배경지식이 있어야 이해가 되는 작품이에요. 물론 잘 알면 더 좋겠지만 대충 사다코라는 여자 귀신이 나온다는 것과 남에게 보여줘서 저주를 퍼뜨리는 형식이라는 점만 알면 충분합니다. 오컬트 잡지사에서 일하는 후지마라는 청년은 원고를 쓰던 작가가 끔찍하게 죽은 것을 발견하고, 그때 동행한 알바생이 건넨 작가의 원고를 읽게 됩니다. 그 원고는 호러 장르를 좋아하지만, 가정 형편은 좋지 않은 소녀 리호를 중심으로 '즈우노메 인형' 저주가 퍼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읽자 현실에서도 인형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런 후지마를 돕기 위해 노자키와 마코토가 나서게 됩니다. 책은 리호가 주인공인 작중작과 그 소설을 읽는 후지마가 겪는 현실이 번갈아 서술되고, 저주가 점점 현실을 침식하며 하나로 모이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요.

 

일단 '즈우노메 인형' 괴담 자체는 그냥 흔한 내용이에요. 우연히 건드리면 안 되는 인형을 만졌다가 저주를 받는데 이걸 피하려면 이런 노래를 불러야 되고 어쩌고 하는 건데 결말까지 딱 정형화된 이야기거든요. 문제는 고작 괴담에 불과한 인형이 어째서 현실에 등장해서 사람을 죽이냐는 거죠. 그 글에서 리호는 동생이 둘인 장녀로 아빠에게서 도망친 상태예요. 하지만 엄마 역시 자신을 더 우선하며 현실도피 중이라 아직 중학생에 불과한 리호는 그 사이에서 불안하기만 해요. 그 와중에 <>이 개봉되어 학교에서 사다코라고 놀림받고 친구라고는 도서관에서 마주친 초등학생 여자애밖에 없는데 그 여자애에게서 바로 이 '즈우노메 인형' 괴담을 알게 되고, 그 후로 리호 주변에서 자꾸 알 수 없는 죽음이 연달아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리호의 동창으로 마코토의 언니가 등장인물로 나오면서 마코토 역시 사건의 당사자가 되고 말죠.

 

작가의 전작 <보기왕이 온다>에서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내용을 호러와 결합해서 굉장히 흥미로웠거든요. 일본 호러하면 가장 큰 특징으로 꼽는 것 중에 하나가 지진처럼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는 거잖아요. 근데 일단 인과관계가 굉장히 뚜렷해서 좀 놀랐었거든요. 요 작품에서도 가부장제를 비롯한 남녀차별이나 여성혐오적인 면을 지적하는 장면이 나와서 눈에 띄었어요. 다만 이번 작품에서는 전작만큼 강하게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괴담이 인지도를 얻고 도시 전설이 되어 강력한 저주로 작동하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히가 자매 시리즈인만큼 마코토와 노자키를 다시 본 것도 반가웠고 영능력자가 등장만 하면 모든 걸 해결하는 만능으로 작용하지 않는 점도 좋아요. 인물에 대한 건 시리즈가 자세히 말하기가 어렵네요ㅠㅠ 또 복선도 촘촘하게 깔려 있어서 읽다가 음? 하고 걸리는 부분은 나중에 다 작가 선생님이 알려주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미스터리 요소도 강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저주'라는 사회적으로 들키지 않을 수단을 지닌 사람은 살인에 대해 더 심리적 허들이 낮아지는 것인지, 평범한 사람 중에 살인이 가능한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지, 그럼에도 살인을 택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여러모로 보여준 느낌이라 만족스러워요. 아니 사실 제일 말하고 싶은 부분은 따로 있는데 그건 너무 스포일러라 말할 수가 없는 게 너무 아쉬워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澤村伊智 <ずうのめ人形> KADOKAWA / <즈우노메 인형> 이선희 옮김 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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