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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 <불쌍해라(웃음)>

일어번역가 이진아 2025. 4. 10. 22:49

나시라는 작가가 요코(가명)라는 여성이 겪은 이상한 일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옮긴 형식의 글입니다.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내용들이 합쳐지고 마지막 작가의 후기를 읽으면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가 완성되는 형식이에요. 여기에 약간 반전이 있는데 이 부분은 해석의 여지가 있어서 읽는 사람마다 조금 다르게 느낄 수도 있겠어요.

 

아무튼 본문에 나오는 이상한 일은 주로 인터넷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동인 활동을 하며 ''이라는 사람과 친해진 요코는 행사장에서 첫 오프모임을 가진 뒤 집까지 놀러가는 사이가 돼요. 그런데 거기서 린은 집에 오컬트적인 장치를 해두었다며 "오른쪽 위부터 왼쪽 아래"가 중요하다고 해요. 이 문장이 진짜 핵심 문장이거든요. 아무튼 요코는 린의 이런 알 수 없는 말에 섬뜩함을 느끼고 취업도 하고 장르도 달라지며() 자연히 멀어지게 됩니다.

 

줄거리에서도 알 수 있듯이 2000년대에 동인 활동을 했으면 좀 친숙할 소재가 몇 가지 나와요. 저거 외에도 스팸메일 같은 저주의 편지라든가 드림소설에 자기만의 이름을 써넣는 것이라든가. 스레드 형식의 게시판에서 자기가 뭘 하는지 중계하는 그런 거요. 예전에 스레딕인가? 하는 사이트 있었잖아요. 거기서 한때 혼자 숨바꼭질인가 뭐 유행한 거. 그런 거 좀 보신 분이면 내용도 이해하기 빠를 것 같아요. 게시판에 익명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전부 사실만 쓴다는 보장도 없고 때로는 정말 전생의 원수인가 싶을 정도로 집요하게 악의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걸 소설로 썼다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특히 드림소설 넘 악질적인 게 모르는 분을 위해 설명하면 창작자가 쓴 소설에 이름이 비어 있는데 거기에 독자인 내가 임의로 이름을 입력하면 소설 내용에 내가 입력한 이름으로 출력되는 형식이에요. 보통 2차 창작에 많아서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와 연애하는 느낌을 맛볼 수 있는 글이랄까. 암튼 그렇게 이름을 입력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은 내용이 이름을 입력한 ''가 끝없이 고통받으며 죽는 내용이면 넘 기분 나쁘잖아요. 근데 이름 넣기 싫거나 귀찮은 사람을 위한 '디폴트 네임'이 있거든요. 여기서 홈페이지 주인은 디폴트 네임으로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의 이름을 넣어둬요. 그럼 굳이 이름을 안 바꾸고 소설을 읽은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싫어하는 사람을 위한 헤이트 연성을 읽게 되는 거죠.

 

괴담에 쓰인 내용 자체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해서 그런가 확실히 현대적인 느낌이 나서 '요즘 시대의 도시괴담' 느낌이고 마무리까지 작가가 의도한 점은 확실하게 드러나는 건 장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타깃을 잘 모르겠는 느낌이에요. 묘사도 홈페이지 운영하던 동인계가 나오다 보니 이런 글을 읽을 만한 요즘 독자에겐 넘 옛날 일처럼 보이고, 그보다 윗세대에게는 이 글이 그렇게까지 흥미로울 내용인가? 라고 물으면 뭐랄까 음... 예전에 니찬넬 공포글 번역해서 올리던 블로그 있었잖아요. 그게 '그때' 읽어서 더 재미있었던 느낌이라고 하면 아시려나? 지금 와서 그때 그 인터넷 글을 읽기엔 나도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느낌. 그래도 이런 추억 여행하고 싶거나 인간의 악의가 어디까지 가느냐, 좀 해석할 여지가 있는 구성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かわいそ> イースト・プレ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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