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은 왜 항상 엄마의 몫인가
어린 딸을 욕조에 빠뜨려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미즈호라는 여성의 재판에 보충 재판원으로 선정된 리사코가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마찬가지로 어린 딸을 키우는 자신의 상황과 비교하며 점차 동일시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에요. 저번에 읽은 <종이달>에 이어 두 번째로 읽었는데 <8월의 매미>와 합해서 사건 3부작이라고 부른대요. 하지만 전 멘탈이 털려서 나머지 하나는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사건의 팩트만 보면 미즈호는 아이가 죽기 전에도 꼬집은 듯한 흔적이 있어서 학대 정황이 의심되고 육아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게 드러나는데 여기까지 보면 누구나 엄마가 잘못이라고 하겠지만, 왜 엄마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는 비슷한 처지인 리사코 외에는 대부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사실 리사코 역시 현실을 인정하는 게 두렵기도 하고 자신도 비정한 엄마라고 비난받을까봐, 그리고 은연 중에 계속 남편에게 무시당하면서 자신감마저 잃은 상태라 좀처럼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해요. 미즈호와 리사코의 남편이 나와서 말하는 장면마다 내 남편도 아닌데 막 주둥이 때려주고 싶고 그렇더라고요. 직접적으로 막 욕을 하거나 화를 내는 건 아닌데 말을 왜 그딴 식으로 해서 듣는 쪽이 화를 내기도 애매한 상황은 기가 막히게 잘 만드는지 모르겠어요. 뭐 어디서 단체로 학원이라도 다니나?
그리고 재판 중에 시어머니와 친정 엄마가 나와서 진술하는데 시어머니야 뭐 어떻게 보면 당연히 아들이니까 감싸느라 며느리보단 아들에게 좀 더 유리해지게 하려고 노력하는데 근데 친정 엄마라고 딸 편은 아닌 그 불균형적인 관계에 대한 묘사가 진짜 미쳤고요(positive). 약간 울화통 터지는데 심리 묘사가 좋아서 손에서 못 놓겠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리사코 쪽도 재판 때문에 딸을 시댁에 맡기는데 조부모는 손녀라고 막 떼쓰는 대로 다 들어주고 리사코는 애를 맡아준다는 미안함에 강하게 나서지도 못하니까 애는 엄마 눈치 보면서 괜히 더 칭얼거리는데 애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짜증나는 거 있죠. 그 와중에 집에 와서 엄마가 좀 훈육하려고 하니까 남편 놈은 꼭 이럴 때만 아빠 행세하면서 애를 감싸며 혼자 좋은 아빠 되는 그 상황. 그렇게 애한테 점수 따는 동안 똑같이 외부 활동하고 왔는데 밥상 차리는 건 또 엄마고, 시어머니가 집까지 들고 가기도 힘들게 반찬도 많이 만들어줘서 마치 별 수고도 없이 밥상이 차려지는 듯 보이게 하는 그 상황이란. 아 진짜 쓰면서도 너무 싫다......
사실 저는 남의 일이라 리사코가 재판을 참관하며 멘탈 터지고 남편은 자꾸 신경에 거슬리게 하고 시어머니도 부담스럽고 애는 말도 안 들으니까 하.. 그냥 애 주고 이혼해.. 이혼해..... 이혼해........! 하고 염불을 외우면서 읽었는데 소설은 미즈호의 사건과 리사코의 현실을 비교해서 보여주며 '완전무결한 엄마'를 요구하는 사회적 압박을 묘사하고 있어서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일로 한정하더라고요.
제일 인상 깊은 건 재판이 진행되며 미즈호의 옷차림이 바뀌는 거였는데 이 변화는 약간 스포일러 같아서 생략할게요. 작품 내에서도 매번 무슨 옷을 입고 나오는지 묘사되는데 그게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더라고요. 심리 묘사가 뛰어난 소설을 찾는다면 추천할게요.
가쿠타 미쓰요 <언덕 중간의 집> 이정민 옮김 한스미디어
소장기관
밀린 책을 느리게 읽는 망한 사랑 소믈리에
sozang.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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