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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마기 <아리아드네의 목소리>

일어번역가 이진아 2025. 8. 30. 01:05

미궁을 안내하는 아리아드네의 실이 아닌 드론

 

지진이 일어나는 바람에 계획 도시 와노쿠니의 무너진 지하에 홀로 남겨진 생존자를 드론을 이용해 길을 안내하여 구출하는 소설이에요. 다만 이 생존자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말할 수 없는' 세 가지 장애를 지닌 여성이고요. 과거에 사고로 형을 잃으며 자신이 구하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를 지닌 청년이 드론을 조종하는 역할을 맡으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사실 초반에 도시 이름이 와노쿠니일 때는 좀 비웃었는데(심지어 영어로 WANOKUNI라서 좀 더 웃김) 전개 속도나 이야기 구성 모두 좋았어요. 중간에 위기 상황이 오면서 ', 결말은 이거겠군.' 하고 생각한 결말이 그대로 나왔는데 기승전결이 잘 짜여진 글이라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너무 만족스럽더라고요. 엔터테인먼트 소설 중에서는 오랜만에 되게 만족한 느낌.

 

지하 시설을 드론으로 탐색하며 장애인 여성을 안내하는 거라 안 그래도 힘든 상황인데 인터넷에서 악플만 써대는 사람들이며 현장을 방해하는 유튜버, 그리고 그 여성이 정치가의 조카라는 점 때문에 자력으로 탈출하기 어려운 장애인이란 점보다는 권력을 이용해 인력을 투입한 게 아니냐는 비난 등등 재난 상황에 일부 나타나는 구조에는 하등 도움이 안 되는 모습도 묘사되어서 현실과 비교하며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지 생각해보게 하는 점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심이 되는 건 아무래도 주인공의 말버릇인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거기가 한계다'일 것 같아요. 이건 원래 주인공 형의 말버릇인데 형이 죽고 나서 주인공이 더는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겠다는 뜻으로 종종 말하게 되거든요. 이것 때문에 과거에 사고를 당하고 육상을 포기하게 된 동창에게 무슨 정신론처럼 저 말을 했다가 뒤늦게 재수없다는 말도 듣고 그래요. 약간 '포기하면 거기서 시합 종료' 같은 느낌 같아서 동창도 이해가 되긴 하는데 저 동창이 막상 지진 후에 역시 장애를 지닌 동생을 잃어버리고 주인공에게 드론으로 찾아달라고 하거든요. 여기서도 은근히 누굴 우선할 것인가 같은 문제를 내비치는데 이 장면도 그렇게 길게 끌진 않더라고요. 전체적으로 속도감이 있어서 당장 구조에 집중하게 하는 건 좋은데 이런 재난 상황에 일어나는 딜레마 같은 걸 깊게 파고드는 걸 선호하는 분이면 좀 부족하게 보일 것 같아요.

 

근데 이런 사회나 윤리적 문제보다는 저 중심 대사가 굉장히 자주 나오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에게 있어 '불가능''한계'에 대해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게 하고 있어요. 극한 상황에서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참고로 저는 안 될 것 같으면 빠르게 포기하는 타입이고요 해내지 못한 걸로 그렇게 괴로워하는 타입도 아니에요. 정말 편리한 마음가짐이죠'' 그래서 주인공처럼 끝까지 노력하려는 유형은 저와 상반된 사람이라 좀 더 흥미롭게 보이고 응원하게 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암튼 그냥 순수하게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은 분에게 추천할게요.

 

井上真偽 <アリアドネの> 幻冬舎 / <아리아드네의 목소리> 이연승 옮김 블루홀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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