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랑 이야기
전자책으로는 절대 낼 수 없다고 하도 광고해서 샀던 책이에요.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혼외자인 주인공은 유일한 가족이었던 어머니의 죽음 이후, 이번에는 만난 적도 없는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요. 아버지는 유명한 미스터리 작가로, 그의 친자이자 주인공의 이복 형이 아버지의 유고가 있다면서 주인공에게 그 원고를 찾아달라고 의뢰합니다. 의뢰 이유는 주인공의 어머니가 교정 일을 했는데 주인공도 그 일을 돕곤 했으니 책과 더 인연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처음에 주인공은 생물학적으로만 아버지일 뿐 전혀 모르는 사람의 원고를 찾고 싶지 않지만, 어머니와 일하던 편집자 기리코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녀가 읽고 싶다고 한 그 원고를 찾아보기로 합니다.
전체적으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되어 주인공이 원고를 찾기 위해 만난 아버지의 내연녀 세 명의 말을 듣고 그가 생각하고 느낀 것을 통해 원고를 남긴 아버지이자 미스터리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완성되어 가는 구성이에요. 그러면서 점점 원고와 가까워지기도 하고요. 당연히 주인공 입장에서는 아무리 어머니가 혼자 낳아서 키우겠다고 해도 전혀 접촉도 없고 어머니 외에도 사귀던 여자가 저렇게 많다고 하면 혐오감이 들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독자도 같이 마이너스인 상태로 시작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저는 꽤 아버지가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봤어요. 사실 객관적으론 정말 쓰레기인데; '소설 속 미스터리 작가'라고 생각하면 흥미로운 느낌이랄까. 반대로 주인공이 저에게 너무 무매력이라 그랬나봐요.
왜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냐면 이 책의 가장 큰 세일즈 포인트는 '전자책 제작 불가'잖아요. 그럼 읽을 때 '종이책에만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읽을 수밖에 없어요. 근데 그 비밀이 주인공과 기리코가 찾는 원고에 있다고 하면 그 원고의 행방을 알 것 같은 내연녀 3인과 죽은 아버지가 더 궁금하지 아버지에 대한 혐오감을 표출하는 주인공의 내면 세계는 별로 궁금하지 않거든요. 또 당연히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본다면 주인공의 어머니 또한 그런 사람인데 주인공과 어머니의 관계도 묘사가 돈독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고 무미건조하다고 해야 하나. 제목대로 주인공의 이야기가 제일 투명한 느낌이랄까()
아무튼 왜 책이 꼭 종이책이어야 하는지는 거의 비슷하게 접근하긴 했는데 완전히 알진 못했어요. 근데 알고 나니까 구성 자체는 재미있더라고요. 제가 또 구성이 특이한 책이면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습성이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는 괜찮은 경험이었어요. 근데 개인적으론 위에 썼다시피 주인공이 너무 매력이 없고, 구성을 살리느라 문장이 좀 약한 느낌이더라고요. 그냥 새로운 경험한 것에 만족할래요.
그나저나 뜬금없이 교고쿠 나쓰히코가 인디자인으로 글 쓴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깜짝 놀랐지 뭐예요. 아니 그 방대한 글을 인디자인으로 쓴다고....? 심지어 그게 그런 이유가 있어......?
杉井光 <世界でいちばん透きとおった物語> 新潮社
소장기관
밀린 책을 느리게 읽는 망한 사랑 소믈리에
sozang.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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