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멍하니 누워 있는 거 아니고 사유하는 중이에요
인간이 왜 지루함을 느끼는지 여러 철학자의 말을 통해 알아보고 지루함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에요. 먼저 우리가 여가가 생기고 지루함을 느끼는 것을 러셀은 사회의 발달에 따라 설명했어요. 초기 인류는 채집과 수렵 등으로 바쁘게 살았지만, 정착하고 신분 제도가 생기면서 상류층을 중심으로 음악 감상이나 사냥 같은 여가 활동을 즐기는 분위기가 생기게 돼요. 그리고 즐거운 시간이 생기자 지루한 시간도 생기게 됩니다. 또 상류층의 여가 활동이 다른 계급으로 퍼지며 대중 문화가 형성되게 돼요. 이 과정에서 역시 지루함이 퍼지게 되는 거죠. 또 상류층은 자연스럽게 자본주의 사회의 고용주로 전환되며 사회가 '일'에 맞춰 움직이는 패턴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가 보통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쉬잖아요. 그럼 반대로 왜 주말에 쉬어야 할까요? 월요일부터는 출근해야 하니까. 왜 휴가를 휴가철에 가요? 다른 시기에는 일해야 하니까. 이렇게 일에 얽매인 상태를 니체는 '노예'라고 표현했어요. 밈 중에 "입으로는 싫다고 하면서 몸은 정직하게 출근하고 있군" 하는 거 있잖아요. 딱 그 상태라고 생각하면 돼요.
하이데거는 이 노예 상태;로 인해 생기는 지루함을 세 가지로 분석했습니다. 제1형식은 외부 요인으로 그냥 지루한 상태예요. 외출할 때 버스나 지하철 같은 게 바로 안 오니까 다들 멍하니 있든, 핸드폰을 보든 아무튼 원래 목적과는 다르게 시간을 보내고 있잖아요. 특히 하이데거가 살던 시대에는 기차가 주요 수단이고 이게 배차 간격이 기니까 지루함을 말할 때 항상 기차 예시를 들었던 것 같더라고요. 아무튼 그 다음이 '즐거운데 지루한' 제2형식입니다. 이건 예를 들면 제가 여러분을 만나서 인피니트 얘기를 한다고 해봐요. 그럼 삼겹살 같은 거 구우면서 노래는 이게 좋고 내 최애가 왜 효도강아지고 이런 얘기하면서 신나게 놀겠죠? 그래서 다음에 또 만나기로 해요. 만나서 이번에는 치킨 먹으면서 또 저희 강아지 얘기를 해요. 당연히 재밌겠죠? 근데 이게 사실은 외출-식사-잡담 같은 사교 활동에서 벌어지는 기본 틀에서 크게 벗어날 일이 없어요. 그럼 다음 모임도 비슷하겠죠? 물론 그 시간 자체는 여전히 즐겁겠지만 패턴은 이미 익숙하고 지루해요. 마지막 제3형식은 1형식과 비슷한데 이건 그냥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고 지루한 상태예요. 하이데거는 이 상태가 되어야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거냐면 진짜 심심해서 누워 있다가 혹시 그런 생각해본 적 있나요? "난 왜 이러고 누워 있지... 이런 시간이 의미가 있나..." 하는 거요. 전 많은데요() 이 생각이야말로 철학이며 인간의 존재를 파헤치는 것이라고 본 거죠.
저자는 이런 사상들을 소개하면서 한편 비판하기도 합니다. 하이데거는 인간만이 이렇게 지루함을 느끼고 특별한 존재라고 했지만, 동물도 충분히 지루함을 느낄 때가 있고 또 반대로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삶'을 가치 있는 삶이라고 본다면 동물이야말로 더 가치 있는 삶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 성립된다고 지적해요. 그렇다면 인간도 동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죠. 그리고 지루함을 벗어나기 위한 '결단'을 촉구하는 하이데거의 결론은 자칫하면 테러와 같은 극단적인 행위를 옹호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도 하고요. 테러 자체는 사회 체제에 반하는 '자유로운' 행동이니까요. 그리고 꼭 지루하다고 무언가 행동해야 하는지도 고민할 일이라고 하고요.
이렇게 저자는 처음부터 쭉 흐름을 따라가면서 독자가 스스로 지루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하게 합니다. 철학이 늘 그렇듯 생각하고 판단하는 자기주도적 삶을 살라는 것은 같지만, 그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거라고 하면서요. 특히 저자는 하이데거의 제2형식이야말로 사실 인간이 사는 삶 자체라고 보았어요. 3형식을 통해 자유를 찾는 것도 좋지만, 2형식이 현실적이라고 한 거죠. 아무튼 저는 이제 누워만 있는 걸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시간 낭비? 아니죠, 고유한 나만의 시간 보내는 법 아니겠어요?>_<
國分功一郎 <暇と退屈の倫理学> 新潮社 /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 김상운 옮김 아르테
소장기관
밀린 책을 느리게 읽는 망한 사랑 소믈리에
sozang.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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