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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쿠타 미쓰요 <종이달>

일어번역가 이진아 2025. 8. 10. 19:42

돈으로 산 행복은 진짜 행복일까?

 

고객의 돈을 횡령하고 태국으로 도주한 주부, 리카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돈과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는 소설입니다. 노인의 예금을 관리하다 우연히 마주친 손자와 사랑에 빠지면서 더 능력 있는 어른처럼 보이려고 횡령한 돈으로 데이트 비용도 내고 비싼 옷도 사고 여행도 보내주다가 점점 돌이킬 수 없게 된다는 내용이에요. 그와 동시에 리카의 해외 도주를 뉴스로 접한 동창들도 각자 자신의 가정에서 크든 작든 돈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는 게 나와요.

 

사실 리카의 문제는 남편만 똑바로 처신했어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거든요. 이건 거의 첫 부분에 나오는 거라 딱히 스포일러는 아닐 거 같은데, 결혼 초에 첨엔 남편의 외벌이였는데 그 사소한 곳에서 돈으로 마운팅하는 거 있잖아요. 부부가 외식한 건데 돈으로 생색내고, 그래서 다음엔 부인이 돈 내니까 그 다음에 미묘하게 좀 더 비싼 거 사면서 '너와 나의 수준 차이가 이렇다'라고 어필하는 모습이 진짜 재수없더라고요. 그 외에도 리카가 알바를 시작하고 정직원이 되니까 결정적으로 못된 말을 하거나 폭력을 쓰는 건 아닌데 애매하게 사람 깔보면서 기분 나쁘게 굴어대서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지;; 하면서 읽었어요. 그래서 그런가 리카가 횡령으로 돈이 많아지고 그 연하 남친에게 하는 행동이 약간 남편하고 닮았어요. 그 와중에 돈이 많아도 연애에서 여자가 을이 되는 그 묘사...... 너무 괴로웠고요.

 

리카는 처음엔 남의 돈에 손을 대는 것에 그렇게 큰 두려움을 느꼈는데 막상 돈이 손에 들어온 직후 들키지도 않고, 비싼 매장에서 가격표도 보지 않고 돈을 펑펑 쓰면서 느낀 그 해방감을 맛본 뒤로 점점 이렇게 풍족한 생활을 하는 쪽이 원래 나의 삶이라고 착각하게 되거든요. 그 과정이 너무 생생해서 진짜 횡령 좀 해본 느낌이더라고요; 당연히 해서는 안 될 일인데 독자인 저는 초반에 남편이 어떤 인간인지도 봤고, 남친과의 연애가 어떤지도 봤잖아요. 그 와중에 리카는 당사자라 객관성이 떨어져서 오히려 빠르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돈 쓰는 것으로만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걸 보면 마냥 욕하기도 그랬어요. 아마 그래서 뉴스를 본 동창들도 리카의 상황과 자신의 상황을 비교하는 식으로 묘사되지 리카를 비난하는 쪽으로 묘사되진 않더라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꼭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그 돈을 다루는 나의 태도를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가쿠타 미쓰요 <종이달> 권남희 옮김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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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책을 느리게 읽는 망한 사랑 소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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