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기관

요시카와 도리코 <물거품 이는 대로>

일어번역가 이진아 2026. 4. 1. 20:11
지금의 상처도 언젠간 과거의 일이 되고
 2029년을 기점으로 각 장마다 10년씩 거슬러 올라가 1979년으로 마무리되는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2029년 현재, 화자인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 유우는 평소 관계가 소원하던 외할머니가 사망하며 엄마와 함께 장례를 치르고 이모네 가족과 함께 할머니의 집을 정리하는 내용으로 시작해요. 엄마와 이모는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자매인데 철없는 엄마에 비해 이모가 훨씬 똑 부러져서 마치 언니와 동생이 바뀐 것 같아요. 그걸 보며 유우는 자신과 오빠, 시온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2029년은 화자가 어린 것도 있어서 뭔가 '우리 가족이 평범한 것 같진 않다'라고 느끼는 정도에 그치면서도 왜 평범하지 않은지 읽는 독자는 어렴풋이 알 수 있도록 힌트를 주도록 쓰여 있어요. 겉으로 보면 유우네 가족은 오빠가 집을 나가 남자 친구네 집에 가버린 것 외에는 평소와 다를 게 없거든요. 그런데 한국인과 일본인의 혼혈인 오빠가 왜 유우네 집에 입양되었는지, 엄마는 왜 할머니와 관계가 좋지 않았는지, 아빠는 왜 자신의 부모와 절연했는지, 이모부는 왜 집 정리를 하러 잘 나타나지 않는지 등 어른들 사이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 것을 은근히 보여주는 식이에요.
 각 장마다 서술자가 바뀌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유우의 엄마 이노리가 있습니다. 2019년에는 이노리의 지인, 2009년에는 이노리의 여동생, 1999년에는 이노리의 친구 등 각 서술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이노리의 인생이 끼어 있어요. 그렇게 과거로 올라가 2029년에 사망한 이노리의 엄마, 곤이 1979년에 이노리를 낳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끝나게 돼요. 읽다 보면 등장 인물마다 하나씩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독자도 '가족'에게 이런 비밀이 있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해보게 돼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노리는 어떤 마음으로 현재를 살고 있는지도 생각하게 돼요.
 다만 시간이 거꾸로 가는 데다 A의 비밀을 B가 안다는 사실을 C는 모른다든가 하는 식으로 얽혀 있기도 해서 읽기가 생각보다 더 어렵더라고요. 대신에 초반에 폭탄이 한 번 터지고 후반에 연속으로 터지는데 이게 내 가족의 일이면 너무 싫을 거 같은데 소설로 읽으니까 완전 꿀잼이었어요. 그리고 과거로 갈수록 시대상이 더 많이 얽혀 있는 것도 특징이에요. 여성의 사회 진출이나 결혼 문제 등 한 개인의 삶이 과거로 갈수록 더 많은 사회적 제약이 생기는 건 사실이잖아요. 그런 점에서는 일부는 시대가 만든 비극으로 인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는 건 역시 '시온'이라는 인물이었는데요. 독특하게 작가가 한일 혼혈인 시온이 가끔 한국말을 쓰도록 설정했더라고요. 그는 시작부터 동성애자로 묘사되는 만큼 아직은 동성혼이 일반적이지 않은 일본에서 경계를 허무는 인물로 묘사돼요. 예를 들어 일본어는 '나'를 지칭할 때 여성(와타시)/남성(보쿠, 오레)이 각각 쓰는 표현이 다르잖아요. 그게 이상하다며 스스로 말할 때 '아타시'나 '오레'를 섞어 쓰기도 해요. 또 반대로 한국어에서 화자에 따라 호칭이 달라지는 형제 표현에 대해 '오빠'와 '형'을 함께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보통 이런 호칭에 대해 작가가 일일이 주석을 달아놨거든요. 그러다가 시온이 혼잣말로 흘리는 한국말에는 주석을 안 달아놨단 말이에요. 그 말이 나중에 따로 검색하니까 이런 뜻이더라~ 하면서 허걱! 그때 그 말이! 해야 하는 부분인데 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 수 있으니까 그 대사가 나온 순간 진짜 헐 미친!! 하고 느낌표 백만 개 띄웠다니까요.
 원래 이런 구성의 책은 끝까지 읽고 나면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그 수많은 일을 겪고 난 결과가 이것인가... 하게 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어른이 되어 갈 유우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어른이 될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었어요. 다만 2029년의 일본은 부부별성제도가 도입된 것으로 작가가 설정한 것을 보면 개인이 좀 더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바란다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아요.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사회 모습, 복잡한 인간 관계, 그리고 망사 좋아하시는 분에게 추천할게요.
 
吉川トリコ <あわのまにまに> KADOKA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