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욕망이 허용되는 범위는 누가 정하는가
사진가인 니카는 5년 사귄 남자친구, 히라쿠에게 프러포즈를 받은 다음 날, 그가 지하철에서 도촬 현행범으로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야기는 니카가 남자친구와 헤어져야할지 고민하는 전반부와 성범죄를 저지른 후 히라쿠의 시선을 담은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어요. 사실 이 부분만 읽은 독자, 특히 여성이라면 대부분 "이걸 안 헤어지고 고민을 해?" 할 거예요. 그런데 그 고민에는 여성으로서 겪는 여러 가지 문제가 담겨 있습니다.
초반에 등장하는 부분만 언급하자면 이런 식이에요. 일단 히라쿠는 다행히(?) 합의에 성공해서 기소되지 않고 풀려나게 돼요. 그럼 '피해자도 용서했는데'라는 전제가 생기는 거죠. 히라쿠의 부모가 바로 그런 이유로 마치 인생의 해프닝인 것처럼 "대신 결혼하면 잘할 거야^^" 하고 넘기려고 하고 히라쿠도 니카와 헤어지고 싶지 않으니 은근히 동조합니다. 니카 입장에서는 결혼은 내가 해줘야 가능한 건데 왜 너희가 받아주는 것처럼 굴지? 싶어서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저 '피해자는 용서했다'라는 점 때문에 제삼자인 본인이 '용서'라는 걸 해도 되나 어려운 거예요.
그런데 반대로 히라쿠의 누나는 결혼해서 딸까지 낳은 입장에서 동생이 성범죄자라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절연을 선언하고 트위터에 본인의 성추행 피해 경험이며 성범죄에 관대한 사회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면서 니카에게도 당연히 헤어지라고 강요해요. 하지만 니카는 '본인의 분노에 심판을 내릴 수단'으로 자신의 교제를 이용하려는 행동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여기까지 보면 히라쿠의 가족은 모두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니카를 이용하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아직 상황 자체를 납득하지 못한 니카는 이별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카메라로 특정 부위를 찍는 행위는 범죄가 되었지만, 공연 중인 아이돌을 촬영하는 행위는 여전히 허용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미지들이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는지도 알고 있어요. 어떤 행위는 죄가 되고, 어떤 행위는 죄가 되지 않지만, 여성에게는 이 모든 시선이 위협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죠. 전반부가 '찍는 쪽'인 니카의 시선이었다면 후반부는 '찍히는 쪽'인 피해자의 삶을 보여주며 여성이 겪는 또 다른 괴로움을 묘사합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여성의 삶이 묘사되거든요. 아마 읽다 보면 모든 인물에게 공감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모두 니카처럼 본인이 납득할 지점을 찾은 것은 알 수 있거든요. 히라쿠는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라고 다짐하지만, 그것은 죽을 때나 증명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에 비하면 이 책에서 묘사되는 여성들의 선택은 언뜻 외부에서 보기에는 잘못된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이건 언제든지 다른 선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뭔가 위로가 되는 책이기도 했습니다.
성범죄를 소재로 하다 보니 불편한 묘사가 없지는 않아요. 저 역시 읽는 내내 “그래서 언제 헤어지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페이지를 넘겼어요. 그럼에도 이 책은 여성의 삶과 선택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습니다. 니카와 히라쿠의 결말이 궁금하거나, 여성의 삶에 대해 스스로 질문해보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할게요.
一穂ミチ <恋とか愛とかやさしさなら> 小学館
소장기관
밀린 책을 느리게 읽는 망한 사랑 소믈리에
sozang.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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