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기관

아사쿠라 가스미 <달리 누가 있어>

일어번역가 이진아 2026. 6. 11. 21:56

내 인생의 전부가 될 사람을 만나기까지 16년이 걸렸다

 

열여섯 살 소녀 에리는 어느 날 우연히 같은 나이의 소녀, 가슈 레이코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소설은 에리가 레이코를 사랑한 나머지 파멸하는 충격적인 과정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묘사해요. 줄거리부터 이러니까 에리의 사랑이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는 대충 짐작이 갈 거예요. 이야기는 그런 결말보다 에리가 얼마나 레이코를 사랑하는지 그 마음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합니다.

 

에리는 처음부터 레이코에게 고백할 생각은 하지 못해요. 이게 2006년도 작품이기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 에리에게 레이코는 친구가 된 것조차 감사할 일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에리는 레이코를 향한 마음을 혼자 발산하는 쪽으로 풀게 됩니다. 에리는 레이코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황송하기 때문에 혼자 생각할 때는 '빌로드'라고 부르게 돼요. 그렇게 매일 수백 번씩 정해진 분량만큼 빌로드를 반복해서 쓰고, 밤이 되어 모두가 잠든 시간이면 자전거를 타고 30분을 달려 레이코의 집이 보이는 공원에서 레이코의 방 창문을 바라보는 것이 일과가 됩니다.

 

둘은 겉으로는 '절친'이 되어 지내게 되는데 문제가 생겨요. 레이코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갈 계획임을 밝힌 거예요. 에리는 레이코의 이상형인 남자를 가상으로 꾸며서 설명하고, 레이코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일본에 붙잡아두기로 합니다. 그런데 레이코가 실제로 그 남자와 만나고 사귀게 되면서 에리는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해요. 에리가 레이코와 연결될 '매개체'로 만들어낸 남자가 실체를 갖고 등장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결국 레이코의 유학을 막지도 못 합니다.

 

여기서부터 결말까지는 그냥 충격의 연속이거든요. 그 모습이 외부에서 보면 왜 저렇게 무모할까 싶기도 해요. 그런데 시작부터 끝까지 에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레이코를 세상의 중심에 두고 살았다는 점에서 이렇게 순수한 사랑이 또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뭐랄까 아직 어려서, 세상을 몰라서 그런다는 평가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자세한 부분은 스포일러라 생략하겠지만, 전체적으로 '여성'이라는 점을 잘 사용한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동성애라는 점 외에도 저 생략된 부분에서 참 여러 가지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호불호는 명확하게 갈릴 소설일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진짜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약간 그 '기승전레이코'로 이어지는 사고 흐름이 저는 정말 평생 이해하지 못할 감성이라서 더 매력적으로 느꼈나 봐요.

 

朝倉かすみ <ほかにがいる> 幻冬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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