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의미를 찾아 부조리한 공간을 헤매는 인간의 말로
강한 제약으로 통제받는 상황에서 한 남자의 행동을 묘사하는 디스토피아 소설입니다. 주인공인 아마노는 공중에 매달린 어떤 통에 갇혀 머리만 내놓은 상태인 것으로 시작돼요. 거기서 이 통에서만 벗어난다면 나비로 우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버티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기적처럼 통이 열리고 아마노는 분뇨에 얼룩진 상태로 자유를 얻게 됩니다.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알몸에 온통 분뇨를 묻히고 추위에 떨며 지하로 내려가자 옷을 한 벌씩 나눠줘요. 화려한 색이 눈에 띄는 그 날개라 부르는 옷을 입어야 진정한 나비가 될 수 있는 거죠. 통에서부터 탈락하지 않고 지하까지 살아서 내려온 아마노는 뛸 듯이 기뻐하며 옷을 받고 집을 배정받은 뒤 본격적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
일이라는 건 기계공으로서 철로 나비 모형을 만드는 거예요. 어떤 나비를 만들지 디자인을 그리는 것부터 제조, 가공하는 모든 과정을 한 사람이 맡아서 종일 일하는 거죠. 아마노는 나비 제작이라는 일을 하게 된 것이 너무너무 행복하지만, 관리자가 봉을 들고 기계공 사이를 돌아다니며 때때로 폭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늘 긴장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러다 문득 생각하게 되는 거죠. 왜 시키는 일을 수행하고 있는데 맞아야 하는 걸까?
아마노는 누구보다 '먼저 행동하는 사람'이거든요. 다들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가운데 다른 동료에게 놀이터에서 놀자고 제안하고, 관리자에게 왜 자신을 때리냐고 물어보고, 나비를 만들어야 하는 일에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해요. 그 과정에서 아마노는 자신이 하는 일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씩 이성을 잃게 되고 맙니다. 하다못해 관리자가 때리는 것에도 의미가 없거든요. 그냥 관리자는 그런 존재니까 대충 내킬 때 아무나 때릴 뿐이지.
이야기는 아마노가 체제에 반항하는 행동을 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게 되는데 디스토피아라는 장르에 충실하게 정말 꿈도 희망도 없고요. 총 3부 구성인데 이런 통제된 상황에 지배받는 인간의 마음을 다각도로 보여줘서 좋았습니다. 원래 이런 상황에서는 그냥 눈에 안 띄게 조용히 있는 게 제일 안전하잖아요. 근데 주인공은 계속 의미를 찾으려고 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니까 이 과정 자체가 바로 인간의 존재 의미가 아닐까 생각되더라고요. 사실 중간에 얼마든지 이쯤이면 안주해도 되겠다 싶은 상황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끝까지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왠지 위안이 되었어요.
초반에 통에 갇혀서 꿈을 꾸는 장면이나 나비에 관한 이미지가 강하다는 점에서 당연히 장자의 호접지몽이 떠오르기 마련이잖아요. 실제로 내용 중에 어떤 것이 진짜일지 묻는 장면도 나오거든요. 부조리하면서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를 좋아하면 추천하고요, 반대로 몽환적이고 비합리적인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비추할게요.
金子薫 <道化むさぼる揚羽の夢の> 新潮社
소장기관
밀린 책을 느리게 읽는 망한 사랑 소믈리에
sozang.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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