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지피티는 우리 엄마
타자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에요. 현대에 가까운 근미래를 배경으로 스스로 죽음을 택할 수 있는 '자유사'가 보편화된 시대에 주인공인 사쿠야의 엄마가 '이제는 충분하다'라고 하면서 자유사를 하겠다고 해요. 사쿠야는 당연히 엄마가 죽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까 반대하면서 자유사를 하려는 '본심'이 무엇인지 묻는데 그 대답을 듣기도 전에 엄마는 사고로 사망하고 맙니다. 혼자 남겨진 사쿠야는 엄마의 VF, 그러니까 인공지능을 만들어 엄마와 교류하며 엄마의 본심을 알아내려고 하면서 시작돼요.
VF는 의뢰인이 원하는 시기로 모습을 지정해서 생전에 남긴 기록과 다른 자료 등을 바탕으로 진짜에 가깝게 만들어지고, 부족한 부분은 사용자가 학습을 시켜서 보완하는 방식으로 완성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무언가 그 사람과 다른 반응을 보이면 "엄마는 그렇게 말 안 해. 엄마라면 이렇게 말할 거야." 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엄마가 죽기 1년 전의 시기로 만들어진 VF는 자유사에 대한 의사가 없어서 사쿠야는 엄마를 담당한 의사, 엄마의 친구 등 주변 인물을 만나며 점점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게 되고, 이 과정에서 혼자 남은 자신의 현실과 마주하게 돼요.
우리가 안락사 보편화 문제를 얘기할 때 항상 같이 나오는 말이 이게 정말로 '본인의 의지'로 선택하는 것이냐 하는 점이잖아요. 불치병에 걸려 삶이 괴롭다든가 금전적인 문제로 생활이 어렵다든가 할 때 안락사를 선택하는 것에 정말 외부의 압력이 전혀 없을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을 논의하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심지어 이 책에서는 '자연사'의 반대로 '자유사'라는 단어를 써서 그 점을 심도 있게 파헤치고 있어요. 사쿠야의 가정도 미혼모인 엄마와 둘이 살면서 그렇게 풍족한 생활을 한다고는 할 수 없거든요. 그럼 남은 자식 입장에서는 엄마가 대체 뭐가 '이제 충분하다'는 건지 이유를 알고 싶을 거예요.
그래서 작품 내에서도 '빈부격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현실에서는 부자들만 가는 고급 리조트가 가상 공간에도 구현되어 있는데 부자들은 이걸 직접 리조트를 이용하기 전에 시설을 둘러보는 용도로 쓰고, 서민들은 실제로는 못 가니까 대리 만족을 한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리고 사쿠야가 '저쪽 세계'로 표현되는 부자와 만나면서 인식의 차이를 실감한다든가, 가상 공간에서 쓰는 아바타의 가격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지는 등 빈부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면서 정말 자유사는 자유인가 묻는 거죠.
또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답게 사쿠야의 직업도 미래적이거든요. 사쿠야는 '리얼 아바타'라는 직업에 종사하는데, 단말기를 통해 의뢰인과 연결된 채 의뢰인의 아바타가 되어 직접 움직여서 의뢰 내용을 수행하는 거예요. 거동이 불편한 사람 대신 외부 업무를 대신할 수도 있고, 시간이 없는 사람을 위해 장을 보거나, 사정상 가기 힘든 여행지를 다녀오기도 해요. 한마디로 그냥 심부름꾼인 거죠. 고등학교를 중퇴한 사쿠야가 학력이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나름대로 보람도 느끼는 직업이기도 한데 직접 몸을 움직이는 만큼 작업 환경도 열악하고 보수도 적어서 사쿠야는 이것 또한 엄마가 자유사를 결심한 원인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돼요.
그런데 '본심'이라는 건 정말 그 사람만 알 수 있는 거잖아요. 겉으로 드러난 태도가 본심과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를 가능성도 충분히 있으니까요. 작품 내에서는 학습된 방식대로 반응하는 VF엄마의 말은 정말로 본심일까? 하는 것부터 타인의 아바타가 되어 일하는 사쿠야의 상황 역시 그 본질은 어디에 있을지 생각하게 합니다. 또 엄마의 죽음 후 사쿠야는 뜻밖의 일을 겪으면서 개인이 '자유사'를 결심하는 데 정말 금전 문제가 가장 큰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돼요. 물론 금전 문제도 이유 중에 하나일 수 있겠지만, 정말 한 명의 사람이 스스로 죽음을 결심하는 것에 돈 문제가 전부일까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자유사를 결심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나름 답을 내리게 돼요.
전체적으로 있을 수도 있는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서 흥미로웠고요, 전 사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은 내용이 너무 좋다기보다 문장을 좋아하는 쪽이거든요. 그래서 뭔가 인물 간의 상호작용이나 설정 같은 게 크게 매력적이라는 생각은 사실 별로 안 드는데() 그 모든 걸 뒤덮는 문장력이란 이런 건가 싶어요. 하.. 진짜 존잘은 존잘이다....>_<
平野啓一郎 <本心> コルク / <본심> 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소장기관
밀린 책을 느리게 읽는 망한 사랑 소믈리에
sozang.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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