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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와 가즈네 <탐욕스러운 양>

일어번역가 이진아 2025. 12. 10. 20:41

양 목장 체험왔더니 늑대밖에 없는 건에 대하여

 

'양의 탈을 쓴 늑대''희생양'처럼 양과 관련된 것을 소재로 다섯 편의 이야기가 담긴 단편집이에요. 소제목을 보면 다 '탐욕스러운 양' '배덕한 양' '잠들지 못하는 양' 등으로 통일감 있게 구성되어 있어요. 내용은 모두 여성의 광기에 대해 다루고 있고, 반전이 있는 미스터리 요소와 섬뜩한 호러 요소가 결합된 형태예요. 앞의 네 편이 각각 별개의 이야기고, 마지막 단편에서 앞의 이야기가 같은 세계관의 이야기임을 보여주는 식이에요. 이 책이 데뷔작이고 양 시리즈로 후속작이 하나 더 있더라고요.

 

표제작인 '탐욕스러운 양'은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서 자주 보이는 자매 사이의 다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귀족 같은 생활을 하는 미인 자매를 모시는 사용인 여성의 서술로 전개되는 내용이에요. 욕심이 많아서 인형, , 남자 등 동생의 것은 무조건 빼앗아야 직성이 풀리는 언니와 그런 언니의 행동을 감내하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던 착한 동생이 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동생이 언니를 살해하고 맙니다. 이 사건은 정말 참다 못한 동생이 충동적으로 언니를 죽인 것인지, 아니면 생전에 언니가 "쟤야말로 양의 탈을 쓴 늑대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동생이 언니를 악역 영애()로 만든 끝에 제거하고 만 것인지 알 수 없는 형태로 진행돼요. 이 모든 것은 사용인의 시점에서 서술되기 때문에 독자는 이 서술자가 신뢰할 만한가 의심하면서 자매의 진실을 판단해야 하는 거죠. 언니가 보석으로 치장하고 동생은 자수가 취미인 것 등 로판 장르에 흔히 묘사되는 것과 여성의 광기가 결합되어 장르의 클리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는 재미도 있었어요.

 

비슷하게 '스톡홀름의 양'도 로판 비틀기에 가까우면서 훨씬 강렬한 느낌이에요. 탑에 유폐된 제1왕자와 그를 모시는 네 명의 사용인 여성으로만 이루어졌던 세상에 옆 나라 왕녀 출신이라는 예쁘고 젊은 여성이 오게 되고, 왕자가 그녀를 노골적으로 총애하면서 사용인 사이가 금이 가기 시작하는데 그 와중에 탑을 찾아온 왕이 죽게 되고... 하는 이야기거든요. 요것도 소재 자체는 클리셰 느낌이 나죠? 이게 어떻게 달라지게 되는지 보는 재미가 쏠쏠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개인적으로 '잠들지 못하는 양'이 제일 좋았어요. 주인공이 불륜으로 뺏은 남자를 친구에게 뺏기고; 자꾸 그 친구를 살해하는 꿈을 꾸게 되어 불면증에 시달리게 돼요. 잠을 제대로 못 자니까 점점 현실과 꿈의 구분이 어려워지게 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정말 살해되어 꿈에서 자신이 암매장한 곳에서 발견되고 맙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정말 살해한 게 맞고 이게 들키는 게 아닐지 불안해져요. 약간 환상 소설처럼 현실과 꿈의 구분이 애매한 묘사와 찐 호러 요소, 그리고 불륜의 최후와 반전 등 아주 넣을 수 있는 건 꽉꽉 다 담은 느낌인데 제목대로 잠이 부족할 때 오는 그 신경질적이고 불안한 심리가 잘 드러나서 좋더라고요.

 

단편의 소제목이 통일된 느낌이나 독특한 세계관, 서술 트릭 등 다양하게 시도한 게 보이고 특히 호러 느낌이 강한 편이라 여름에도 잘 어울리는 책이었어요. 좀 다채롭게 미친 이야기를 찾는 분에게 추천할게요! 근데 여성의 광기를 다룬다고 하면서 대개 남자가 얽혀 있으니까 요런 부분에서 약간 한계가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그래도 데뷔작이라고 생각하면 꽤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어요.

 

美輪和音 <強欲> 東京創元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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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책을 느리게 읽는 망한 사랑 소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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