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온통 하얗게 물들어 아름다운 ...벌레?
2026년(!)을 배경으로 이상 기후로 인한 인류의 위기를 다루는 소설입니다. 지구온난화가 계속되어 영구동토층이 녹기 시작하여 드러난 석탄층에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신종 벌레가 인류를 습격하게 되거든요. 이 벌레의 특징은 먼저 외형이 눈처럼 하얗고 좁쌀처럼 작아서 마치 눈송이처럼 보인다는 거예요. 근데 그 수가 압도적인. 겨울에 눈이 펑펑 내렸는데 아무도 밟거나 치우지 않아서 온 세상이 하얀 그 광경에서 눈이 아니라 벌레가 쌓였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런데 이 벌레는 이산화탄소를 마시고 메탄을 배출하는 혐기성 생물이라 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혐기성 생물은 산소가 없는 환경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 벌레는 번식을 위해 공기가 적고 따뜻하며 영양소는 풍부한 인간의 몸으로 파고들거든요. 그리고 실내로 대피한다고 해도 공기 중의 메탄 비율이 높아지며 호흡이 어려워지게 됩니다. 여러모로 멸망 직전인 거예요.
주인공인 카이는 산악가로 위험한 상황에서 냉철한 판단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그 탓에 자신의 부인마저 구조를 포기한 것으로 악명도 높은 사람입니다. 그는 그린란드와 신장 위구르 부근 등에서 탐사를 벌이다 실종된 일본인들의 행방과 실종 원인을 조사하게 되며 이번 사태와 얽히게 돼요. 그는 정보를 은폐하고 무작정 조사를 명령하는 정부의 지시에 따라 내성적인 생물학자와 학계의 이단아인 지질학자를 데리고 현장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신종 벌레의 존재를 확인하게 됩니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구조로 진행돼요. 하나는 이 미증유의 사태에 대처하는 세 사람의 모습과 함께 전 인류가 겪게 된 벌레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카이가 개인적으로 겪는 아들과의 갈등입니다. 먼저 벌레 쪽은 일단 북반구를 중심으로 1억 명이 사망한 것으로 시작하고요. 심지어 적도 쪽으로 점점 내려오며 희생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요. 일본은 그나마 섬이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어서 시간을 번 상태인데 그래도 일주일 내로 벌레의 천적을 발견해야 하는 상황이 긴박하게 펼쳐집니다. 아들 문제는 카이가 부인을 구조하지 못하고 사망하게 된 일과 관련이 있는데 부자 간에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고요. 이런 구조가 된 까닭은 지구온난화와 연결하기 위한 것 같아요. 신종 벌레 사태를 만든 지구온난화가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닌 것처럼, 당장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개인의 삶도 이어진다는 거죠.
개인적으로 이 구조 자체는 좋았는데 전체적으로 대사가 별로 재미가 없어서 좀 투박한 인상이 들더라고요. 갈등 구조가 두 가지로 대비가 되려면 한쪽은 진짜 긴박하게 대사가 이어져야 하고, 한쪽은 그에 비해서는 진짜 이걸로 싸워? 싶을 만큼 사소한 다툼이 툭툭 이어져야 할 거 같은데 뭔가 대사에 그런 느낌이 좀 없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그런가 캐릭터 조형이 너무 스테레오 타입 같다고 해야 할까요, 좀 매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가까운 시대에 상상 가능한 문제를 다룬다는 점과 하얀 눈이 쌓이는 것과 그만큼 인류가 몰살당하는 압도적인 장면을 보고 싶다면 추천인데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인간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비추할게요.
安生正 <ホワイトバグ 生存不能> 宝島社
소장기관
밀린 책을 느리게 읽는 망한 사랑 소믈리에
sozang.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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