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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 미스미 <나는 여자가 되고 싶다>

일어번역가 이진아 2026. 1. 1. 20:37

사랑을 해야 여자가 되나?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쉰 언저리의 여자와 그보다 열네 살 연하인 남자의 연애와 삶을 담은 소설이에요. 주인공 나미는 미용피부과 페이닥터입니다. 결혼 당시 가정 사정 때문에 의사인 나미가 일을 하고 프리 카메라맨인 남편이 아들을 키우며 가사를 하는 형태로 생활하다 이혼한 뒤, 싱글맘으로 아들을 키우며 어머니 부양까지 하는 중이에요. 심지어 결혼 당시 가사를 맡으며 일종의 경력단절이 된 남편이 주기적으로 자살 소동을 벌이고 생활비를 요구하기 때문에 여기로 나가는 돈까지 있어서 쭉 가장으로 일해야 하는 거죠. 그런 상황에 나미가 일하는 병원의 사장은 파격적인 월급을 주는 대신 주기적으로 만남을 요구하고, 여러 가지로 지친 상황에 결혼을 앞두고 탈모 치료를 하러 온 고헤이와 만나게 되고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지게 돼요.

 

미용피부과 의사에 잡지 촬영까지 할 정도로 또래보다는 젊고 예쁜 나미에 비해 고헤이는 외모적으로는 장점이 별로 없는 듯 묘사돼요. 그런데도 나미는 계속 고헤이에 비해 많은 본인의 나이와 외모를 신경 쓰면서 눈치를 보거든요. 그런데 나미는 사실 성별이 반대였으면 나이에 비해 괜찮은 외모와 고수입 직종인 의사라는 점, 연하 애인을 만난다는 것까지 오히려 능력자 소리를 들을 조건이잖아요. 그래서 이 부분이 좀 젊은 남자와 연애하려면 여자가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 같아서 작품의 한계점처럼 느껴졌어요.

 

그리고 약간 답답한 점은 역시나 제대로 대화를 안 한다는 점 같아요. 나미가 본인의 속마음을 안 드러내고 혼자 감내하려고 하는 건 사실 이해가 가긴 하거든요. 특히 현재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사장과 만나야 한다는 얘기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하기 힘들잖아요. 그럴 바엔 그냥 본인이 다 뒤집어쓰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죠. 또 어떻게 보면 나미는 결혼 초부터 가족을 부양하는 가부장제 남성 같은 역할을 맡음과 동시에 가정을 유지하고 모성을 발휘해야 하는 여성의 역할이 요구되어 왔잖아요. 그 부담이 나미를 더욱 고립시키고 침묵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상황에 오직 자신만을 사랑한다는 사람을 만났으니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렇게 침묵와 책임을 짊어지고 살아야 했던 나미에게 결말로 갈수록 변화를 예고하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나미의 고생을 알아주는 고헤이는 물론이고, 같은 싱글맘으로서 나미의 처지를 이해하고 응원하는 사람도 있고, 또 일하는 여성의 삶을 지지해주는 사람도 나오고 그래요. 다만 나미를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같은 싱글맘들로 제한되었다는 점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이해는 받기 어렵고, 앞으로의 인생 역시 쉽지만은 않을 거라는 걸 보여줍니다. 사실 지금도 남자와 연애하고 남자에게 사랑받아야 여자가 되는 것에는 동의하기 힘든데 여러 가지 일을 거쳐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랑하고, 이전보단 좀 더 자유로워졌을 여자가 된 것에는 지지를 표하고 싶어요. 그리고 은근히 먹는 장면이 많은데 읽고 나니까 꼬치에 맥주 땡기더라고요.

 

窪美澄 <になりたい> 講談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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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책을 느리게 읽는 망한 사랑 소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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