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기관

무라타 사야카 <살인출산>

일어번역가 이진아 2026. 1. 10. 00:49
어제의 비상식이 오늘의 상식이 된 사회
 현대를 사는 우리의 시선에서 보면 비상식적인 행위가 상식이 된 사회를 묘사하는 단편집입니다. 표제작인 '살인출산'은 저출생 시대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내용이에요. 10명을 출산하면 합법적으로 1명을 살인할 권리가 생기거든요. 그럼 난 남잔데 죽이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어떡하지..? 그런 남자 분을 위한->인공 자궁
 이 사회는 출산의 고통을 겪으면서까지 자발적으로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살인이야말로 출생을 위한 '좋은 일'이 되어 있습니다. 살인죄를 지은 사람도 감옥에 가면 형벌로 출산을 해야 해요. 이렇게 살인을 권장하는 사회가 되었지만, 그래도 자진해서 '낳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10명을 낳으려면 10년도 넘는 세월이 필요한데 그때까지 한 사람을 향한 강렬한 살의를 품고 있는 것도 쉽지 않으니까요. 이걸 보여주는 대화가 진짜 밥먹으면서 별것 아닌 잡담으로 묘사되거든요. "너 낳는 사람 할 거야?" "음~ 죽이고 싶은 사람은 있는데 그 정도는 아니라 고민 중ㅋㅋ" 요런 느낌으로요.
 주인공은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약간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주인공의 언니도 낳는 사람인데 이 언니가 어릴 때부터 살인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거든요. 언니는 곤충 같은 걸 죽이거나 자해를 하다가 합법적인 살인이 가능하다는 말에 낳는 사람이 돼요. 10대 때 낳는 사람이 된 언니는 조만간 마지막 아이를 낳을 예정입니다. 이때 주인공에게 '살인이 죄인 올바른 과거'로 돌아가자는 단체에 속한 사람이 접근하게 돼요.
 읽으면서 생명과 죽음은 물론이고 살인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었어요. 이 사회는 살인이 출생으로 이어지니까 좋은 일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장례식도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처럼 흰 옷을 입고 가는 파티 분위기거든요. 근데 정작 사망한 사람은 대체로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훼손되어 있어서 화장하고 뼈만 남은 상태로 진행돼요. 뭐랄까 그 정도로 강렬한 증오와 살의가 세상 사람에게 축복받는 기묘한 모습이 너무 오싹하다고나 해야 할까요. 마지막 반전까지 구성도 훌륭하고 너무 좋았는데 다시 생각해도 전 낳는 사람 안 할 거 같아요.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단편은 '여명'인데 이건 반대로 죽음이 없는 사회를 그리고 있거든요. 세상에 죽음이 없어지니까 다들 그냥 적당히 살다가 대충 죽을 때가 왔다 싶으면 죽는 사회예요. 주인공도 죽을 준비를 마치고 죽으러 떠나는 내용인데 짐도 정리하고 부활 거부 서류도 쓰고 남에게 '센스 있게 죽은' 것으로 보이는 곳으로 떠나는 과정이 짧지만 유쾌하게 쓰여 있어서 끝까지 다 읽고 나니까 하나같이 정신 나간 설정인데 진짜 일어날 수도 있어서 좀 무섭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제일 재미있었던 단편은 표제작 제외하고 '청결한 결혼'이었습니다. 그런 밈 있잖아요. '가족끼리 어떻게 뽀뽀를 해' 이걸 지키고 있는 부부의 이야기예요. 그래서 변태적인 성적 취향()은 바깥에서 즐기고 오고 집에서는 진짜 그냥 생활을 함께 하는 가족으로 지내는 거죠. 그러던 부부가 아이를 갖고 싶어서 클리닉에 찾아가는 이야기거든요. 약간 남녀가 반전된 느낌인데 수정을 위해 의료진과 함께 남편의 사정을 응원하는 장면에서 진짜 크게 웃었어요. 미드소마야 뭐야...>_<
 전체적으로 이걸 어디 밖에서 추천하면 제가 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공개적으로 말하기는 꺼려지는데 하나같이 재미있었어요. 셋이 사귀는 이야기는 이상 성욕 이전에 좀 더러워 보여서 약간 꺼려지긴 하는데 이것도 연애에 대한 '정상'을 묻는다는 점에서는 좋았거든요. 지금 보니 우리나라엔 절판이던데 이걸 2018년에 내기엔 너무 일렀던 것 같기도... 아무튼 저는 추천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