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기관

니시자와 야스히코 <일곱 번 죽은 남자>

일어번역가 이진아 2026. 1. 13. 19:07
 개복치처럼 자꾸 죽는 할아버지를 구하려는 손자의 회귀
 랜덤하게 하루를 회귀하는 성질을 지닌 주인공이 설 연휴 때 살해당한 할아버지의 죽음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소설입니다. 장르적으로는 SF 본격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어요. 먼저 주인공인 히사타로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집안의 막내입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갑자기 하루를 회귀하는 일을 겪고 있어요. 회귀는 총 아홉 번 이루어지는데 1회차의 기본형을 기준으로 8회차까지는 약간의 변주가 가능하고, 9회차에 일어난 일이 최종형이 되는 식이에요.
 현재 히사타로는 두 형과 막내 이모네의 두 딸과 함께 외할아버지와 둘째 이모가 경영하는 회사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매년 갱신되는 유언장에 최종적으로 이름이 쓰인 사람이 자식이 없는 둘째 이모의 양자가 되어 정식 후계자가 되는 거예요. 외할아버지의 눈에 들기 위해 가족은 매년 설 연휴에 모이고 있습니다. 그 연휴가 한창인 1월 2일 할아버지가 가족 중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우연히도 바로 이날 히사타로의 회귀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 회귀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보통은 기본형에서 사건이 크게 바뀌지 않는데 이번에는 1회차 때 히사타로가 할아버지와 종일 술을 마신 날에는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 뒤로 2회차부터는 무슨 짓을 해도 살인이 일어나고 있거든요. 그것도 마치 처음부터 할아버지가 살해당할 운명인 것처럼 형이 살인하는 걸 막으면 사촌 누나가, 사촌 누나를 막으면 할아버지의 비서가, 이런 식이에요.
 이야기는 각 회차별로 조금씩 행동을 바꾸며 살인을 막으려는 히사타로의 모습과 그 행동에 따라 가족의 비밀이 조금씩 밝혀지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자꾸 죽는 것치고는 문체가 경쾌한 편인데 이게 1회차에서는 주인공이 할아버지와 대작하면서 시간을 끌고 난 뒤에는 죽지 않았잖아요. 그러니까 여차하면 마지막엔 본인이 또 술을 마시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할아버지의 죽음은 딱히 무겁지 않은데 회차마다 밝혀지는 가족의 비밀은 오히려 무겁습니다. 정말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집안이에요.
 주인공이 회귀하는 것 외에는 능력을 설명하는 시작 부분부터 복선을 깔고 사촌 누나의 떨어진 귀걸이나 흉기로 쓰인 꽃병처럼 동일한 소품 등장과 동일한 인물들의 회차마다 조금씩 다른 차이를 보여주면서 독자가 사건을 유추할 수 있는 본격 미스터리 형식이라 신선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글 자체는 그리 지루하지 않게 읽었는데 미성년자의 음주도 그렇지만, 사촌 간의 연애와 결혼이 꽤 질척하게 얽혀 있어서 저는 그냥 그랬어요. 약간 막장 드라마처럼 꼬인 인간 관계를 보고 싶다면 추천하는데 저처럼 어떻게 사촌끼리! 이런 사람에겐 비추할게요.
 西澤保彦 <七回死んだ男> 講談社/<일곱 번 죽은 남자> 이하윤 옮김 북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