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일잘러의 비법 공개
군마 현경 수사1과 경부 가쓰라가 맡은 다섯 건의 사건을 보여주는 단편집입니다. 스키장에서 조난당한 사람을 죽인 흉기가 사라졌다든가, 사건 용의자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든가, 타는 쓰레기 봉투를 노린 연쇄방화처럼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어요. 이 사건들이 정말 현실에서도 일어날 법한 것들이라 진짜 경찰이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더라고요. 물론 미스터리 소설에 등장하는 잔인하거나 기괴한 사건도 현실 어딘가에서 벌어질 때가 있지만, 아무리 경찰이라고 매일 그런 사건만 접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점에서 현실적이라고 느꼈어요.
사실 일상생활에서는 경찰과 직접 만나서 교류할 일이 없잖아요. 사실 안 만날수록 좋은 사이랄까. 이 책은 사건이 발생하고 경찰이 해결하는 과정이 쭉 나오다가 마지막에 후일담이 나오는 구성이란 말이에요. 후일담은 사건 해결 후에 사건 관계자에 관한 묘사인데 뭐 살인으로 인간관계가 엉망이 됐든, 집이 가난해졌든 아무튼 더는 경찰이 개입할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그래서 우리의 삶은 사실 이 경찰이 개입할 수 없는 부분이 더 큰데 사건 해결에 나선 경찰이 더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점이 여운이 남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경찰이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부분이 더 강렬하게 다가온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인 가쓰라 경부가 너무 유능해서 좋았어요. 그는 중간관리직 같은 위치라 사건을 취합해서 부하 형사들에게 각각 수사할 일을 맡기고 그 결과에 따라 다시 판단하는 역할이거든요. 근데 일을 맡기면서 부하가 어떤 일을 잘해내는지 관찰하는 묘사도 그렇고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면 진짜 일을 잘한다는 게 어떤 건지 알겠더라고요. 가끔 '너무 확실해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건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도 이게 '왜'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근거를 찾고, 논리적으로 옳게 보이는 증언에도 '왜' 옳은 증언이라고 판단했는지 확인해서 진짜 꼼꼼하고 이런 부분은 경찰이 아닌 저도 배울 만한 점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가쓰라가 말이 많은 타입이 아니고 필요할 땐 부하를 제치고 직접 행동하고 있어서 이게 어떻게 보면 부하에게는 월권처럼 보이기도 하거든요. 본인도 동료의 불만을 충분히 알면서도 사건 해결을 우선하는데 이게 일반 시민 입장에서는 너무 든든해 보여요. 그리고 무엇보다 위화감이 든 부분을 끝까지 파고들어서 범인에게 더는 발뺌할 수 없는 결정적인 질문을 던져 몰아붙이는 게 넘 통쾌했어요. 범인에게 이것저것 줄줄이 묻다 보면 시간이 길어지면서 범인도 나름 대비할 시간을 벌게 되잖아요. 근데 그럴 여지를 완전히 차단한다고 해야 하나. 물론 이게 반대로 보면 기껏 부하 형사들이 발품 팔아서 조사하고 왔더니 주인공이라고 질문 하나로 범인을 잡네ㅠㅠ 할 수도 있을 텐데 매 사건마다 편의점 빵쪼가리에 커피로 대충 식사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 승진해봐야 처지는 비슷해보여서 그저 눈물만 날 거예요.
아무튼 기발한 트릭보다는 현실적인 수사를 좋아하신다면 분명 재미있게 읽으실 거예요. 저 역시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_<
米澤穂信 <可燃物> 文藝春秋/ <가연물> 김선영 옮김 리드비
소장기관
밀린 책을 느리게 읽는 망한 사랑 소믈리에
sozang.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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