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에 모든 역량을 쏟은 현대판 클로즈드 서클
주인공은 대학 동창 모임에 사촌 형을 데리고 참가하여 산 밑에 만들어졌다는 비밀 지하 시설에 방문하게 됩니다. 그때 길을 잃었다는 3인 가족이 찾아오고, 밤이 늦어서 어쩔 수 없이 그 지하 시설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상황에 문제가 생겨 갇히고 말아요. 여기서 나가려면 한 사람이 남아서 문을 열어줘야 하는데 마침 살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남은 사람들은 자연히 살인자를 찾아서 그 사람을 희생하자는 쪽으로 흐르게 되고, 서로 신경이 곤두선 분위기를 비웃는 것처럼 또 다른 살인이 벌어지는데... 하는 이야기예요.
이 책의 설정을 보면 '이렇게 가까운 사이인데 살인이라니'와 '이렇게 가까운 사이인데 희생해야 하다니'라는 두 가지 딜레마를 품고 있단 말이에요. 초반부터 자연스럽게 사촌 형이 약간 탐정 역할 같은 걸 맡으며 사촌 동생인 주인공이 조수가 되거든요. 근데 주인공의 사촌 형은 이 구성원 중 제일 연결고리가 약한 사람이잖아요. 그런 그가 탐정 역할까지 맡으면서 살인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니까 그의 혈연자인 주인공도 이런 두 가지 딜레마라는 극한 상황에 비해서 그렇게 절박한 느낌이 안 들었어요.
그리고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결국 범인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야 탈출 가능한 구조잖아요. 근데 이미 사람을 죽였는데 그렇게 순순히 희생을 할지 저는 좀 회의적이었거든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다 죽는 게 덜 억울할 거 같아요. 범인을 희생시키려면 첫날부터 범인이 누군지 모르지만 다 같이 눈물로 호소하며 제발 살려죠ㅠㅠ 우리 이렇게 많은 추억이 있잖아ㅠㅠ 해야 할 거 같잖아요. 근데 살인이 발생하자마자 많은 클로즈드 서클물이 그렇듯이 각자 뿔뿔이 흩어져서 생활하더라고요. 정에 호소할 틈도 없으니까 뭔가 기껏 저 딜레마를 잘 짜뒀는데 그만큼 잘 살리지는 못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 근데 확실히 요즘 소설 느낌은 나더라고요. 스마트폰에 찍힌 증거를 찾거나, 지문 인식으로 잠금을 풀려고 하는 등 전체적으로 스마트폰에 관한 묘사가 많거든요. 또 전개가 속도감도 있고 글도 잘 읽혀서 페이지터너 소설을 찾는다면 추천하고 싶어요. 그리고 소문의 그 반전은 나름대로 재미있긴 했어요. 근데 이걸 얘기하려면 필연적으로 스포일러를 할 수밖에 없으니까 저랑 방주 얘기하실 분 연락 좀 주시겠어요..?
유키 하루오 <방주> 김은모 옮김 블루홀식스
소장기관
밀린 책을 느리게 읽는 망한 사랑 소믈리에
sozang.stibee.com
*참고로 이 글 발행 후 친구와 만나서 실컷 책 얘기를 하고 헤어졌다. 너무 즐거웠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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