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에 빼앗긴 먹방 인재의 음식 철학
이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투명한 밤의 향기>의 작가, 치하야 아카네가 음식을 소재로 쓴 에세이입니다. 아무래도 음식은 누구나 먹어야 하는 것이고, 여러 음식 중에 취향이 맞는 부분이 한두 군데는 있기 마련이라 공감할 점이 많은 내용이었습니다. 또 나와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작가만의 시선으로 묘사되는 걸 읽을 수 있다는 재미도 있었어요.
저자는 거의 종일 음식을 입에 달고 사는 타입으로 점심을 먹으며 저녁 메뉴를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해요. 또 맛있는 걸 먹으면 자연스럽게 그것과 어울리는 술을 찾거나, 배탈이 잘 나서 살얼음을 띄운 찬 음식을 피하는 등 대식가인 점만 빼면 저랑 비슷한 점이 있어서 여러모로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어요. 특히 건강할 때 굳이 건강식을 챙겨먹지 않는다는 점이 너무 마음에 들더라고요. 전체적으로 먹는 행위 자체를 사랑한다는 게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특히 저자는 케이크나 떡 같은 달달한 디저트류를 좋아한다고 해요. 하루에 케이크는 열 조각 이상 먹기도 한대요. 본문에 본인이 먹고 맛있었던 가게나 상표는 실명을 언급하고 있어서 작가의 팬이면 따라서 사먹어도 좋고, 또 장소만 픽업해서 가이드북으로 써도 좋을 것 같아요. 전에 소설 읽을 때도 느꼈는데 음식의 향과 질감 같은 묘사를 진짜 생생하게 잘 쓰더라고요. 최근 읽은 음식 묘사 중에 제일 만족스러운 글이었어요.
내용을 보면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비결이 나오거든요. 바로 일기입니다. 매일매일 그날 맛있게 먹은 음식을 기록해둔다고 해요. 일기 쓰는 방식만 보면 진짜 꼼꼼하게 관찰해서 세세하게 쓰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저는 몇 번 언급했지만 정말 사실적시형 기록이라 딱히 그에 따른 감정은 잘 쓰지 않는데 이래서 작가는 다른가봐요.
그리고 책에서는 작가로서의 생활도 공개되어 있거든요. 보통은 집에서 작업하며 초콜릿을 끊임없이 먹으며 당분을 보충해야 글이 나오는 타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재미있는 철학이 나와요. 바로 글이 잘 안 쓰여서 정신 건강이 나쁜 상태가 되면, 봉지과자 같은 정크푸드를 잔뜩 먹고 몸 건강도 나쁜 상태로 만들어서 균형을 맞춘다는 거예요. 그렇게 고통을 분산하고 나면 신기하게 컨디션이 좋아져서 다시 글을 쓸 수 있대요.
아프리카에서 생활한 어린 시절이나, 여행에서 생긴 일, 단골 가게의 마지막 영업 등 다양한 음식과 에피소드가 실려 있어서 전체적으로 재미있고 만족스럽게 읽은 에세이였습니다. 다만 히로시마에 방문해서 자위대 소속 남편이 있는 여성과 만나서 카페에 가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근데 그거 아시죠, 직접적으로 뭐라고 말하진 않았는데 이 키워드만 봐도 은은하게 느껴지는 전쟁에 대한 그 얄팍한 감성ㅋㅋㅋ 또 작가가 쓰는 에세이 보면 그런 거 있잖아요. 남과 다른 감성을 보여주는 건 작가로서 장점이긴 한데 그게 일반인의 감성과는 거리가 좀 있는 거. 그래서 전체적으로 글 자체는 재미있게 읽었는데 인간적으로는 마음속에 거리가 좀 생긴 것 같아요. 그래도 읽어 볼 만한 에세이인 것 같아서 추천할게요.
千早茜 <わるい食べもの> 集英社
소장기관
밀린 책을 느리게 읽는 망한 사랑 소믈리에
sozang.stibee.com
'소장기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아즈마 료타 <야근 사건> (0) | 2026.02.11 |
|---|---|
| 후지노 치야 <단지의 두 사람> (0) | 2026.01.30 |
| 유키 하루오 <방주> (1) | 2026.01.20 |
| 요네자와 호노부 <가연물> (0) | 2026.01.20 |
| 니시자와 야스히코 <일곱 번 죽은 남자> (0) | 2026.01.13 |